쌍용자동차 : 우리는 이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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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09-07-16 22:41
[위클리경향/특집]‘죽은 자’ ‘살아남은 자’ 둘 다 마음이 아프다
 글쓴이 : 공투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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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집]‘죽은 자’ ‘살아남은 자’ 둘 다 마음이 아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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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클리경향 | 입력 2009.07.16 13:46 |

 

쌍용자동차 공장 평택지역 르포, 다정했던 이웃간에 냉랭한 긴장감

↑ 쌍용자동차 정문 앞에 나와 있는 경찰서장과 공장 출입에 관해 이야기를 나누고 있는 강기갑 대표.

↑ 베란다에서 쌍용자동차 공장을 걱정스럽게 바라보고 있는 동광아파트 주민 이모씨. 이씨는 남편이 공장에서 파업을 시작하면서 헬리콥터 소리만 나면 베란다에 나가서 전화를 하는 버릇이 생겼다고 한다.

↑ 위_동광아파트 상가에 있는 미술학원의 수업 모습. 아이의 아버지가 해고를 당했느냐 아니냐에 따라 쌍용자동차에 대한 표현이 달라진다. 아래_쌍용자동차 공장 앞에서 전경과 대치 중인 쌍용가족대책위 사람들.

우려가 현실로 바뀌는 데 5년도 걸리지 않았다. 2004년 10월 중국 상하이자동차는 쌍용자동차 인수 본 계약서를 작성했다. 기간산업이 해외로 매각되는 데 대해 기술유출 논란, 직원의 구조조정 등을 이유로 반대 목소리가 높았다. 그리고 2009년 1월 9일 상하이자동차는 쌍용자동차의 법정관리를 신청했다. 법정관리인은 경영정상화 방안으로 직원 2646명에 대해 희망퇴직과 구조조정을 결정했고, 노조는 5월 21일부터 구조조정 반대 파업에 들어갔다. 쌍용자동차 공장이 있는 평택시는 어수선해졌고, 특히 6월 25일과 26일 법정관리인 측이 비해고자 노동자들을 내세워 평택공장에 진입했고, 파업 중이던 노조와 충돌이 생겼다. 이후 쌍용자동차 사태는 모든 것이 '노-노' 갈등으로 비춰지기 시작했다. 하지만 쌍용자동차 사태 해결에 나서야 할 정부와 채권단은 손을 놓고 있다. '죽은 자'(해고자)와 '살아남은 자'(비해고자)간의 갈등만 부각되고 있는 평택을 찾아봤다. < 편집자 주 > 평택-안성간 고속도로를 타고 송탄IC를 빠져나오면 '쌍용자동차'로 가는 길을 알려주는 도로 표지판을 손쉽게 찾을 수 있다. 차로 5분 정도 달린 후 경기도 평택시 칠원동에 있는 동광아파트에 도착했다. 이곳은 아파트 10개 동에 769세대가 모여 있는 곳으로, 주변에는 조그마한 상가가 밀집해 있는 평범한 아파트 단지다. 하지만 이 아파트에서 쌍용자동차 사태로 인해 어떤 일들이 일어나고 있는 지를 엿볼 수 있다.

동광아파트는 2003년 11월부터 주민들이 입주를 시작했다. 쌍용자동차 공장이 가깝기 때문에 주로 직원과 가족들이 입주하기 시작했다. 아파트에서 공장까지 걸어서 10여 분이면 도착하니까 직원들에게 가장 좋은 위치의 아파트다. 관리사무소 담당자는 "769세대 중 50~60% 정도가 쌍용자동차 가족인 것 같다"고 전했다. 동광아파트는 마치 쌍용자동차 제2의 사택 같다.

지난 해 11월, 동광아파트는 임대 5년이 끝나고 일반 분양으로 전환했다. 쌍용자동차 가족들은 분양으로 '내집 마련'을 하면서 "이제 남편이 건강하게 회사에 다니면 모든 것이 잘 될 것이다"는 부푼 마음을 가졌을 것이다. 하지만 그 시간은 단 1개월 뿐이었다. 지난 해 12월 상하이 자동차가 쌍용자동차를 포기한다는 이야기가 나오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6월 25일과 26일 '죽은 자'와 '살아남은 자'가 공장에서 충돌이 벌어진 후부터 동광아파트 주민도 해고자 가족과 비해고자 가족으로 나뉘기 시작했다. 웃고 인사했던 주민들은 한순간에 냉랭하게 변해갔다.

아파트 곳곳에 '노·노 갈등' 여파

이곳에서 만난 이모씨도 쌍용자동차에 다니는 남편을 따라서 2004년 초 동광아파트로 이사왔다. 그리고 다른 사람들처럼 지난 해 11월 희망에 부풀어 분양을 받아 '내집' 마련도 했다. 하지만 요즘 이모씨는 공장에서 파업에 참가하고 있는 남편 걱정 때문에 하루라도 편히 쉴 날이 없다. 특히 헬리콥터 소리만 들리면 공권력이 투입될까봐 공장이 보이는 베란다에 가서 남편에게 전화를 거는 버릇이 생겼다.

"남편은 회사가 상하이차에 매각될 때 걱정을 많이 했다. 남편은 노조 활동도 별로 안했고, 비해고자다. 하지만 노동자끼리 뭉쳐야 한다고 지금 공장 안에 들어가 있다. 남편이 파업에 참가하지 못하게 말려도 봤는데, 뜻이 너무 강해서 이해해주기로 했다."

이모씨는 9살, 7살, 6살 된 아이들을 키우고 있다. 아이들 교육비와 생활비가 많이 들어갈 것이다. 하지만 7월 초에 받은 6월 월급은 50만원이 채 안된다. 생활비 때문에 적금과 보험을 해지한 지 오래다. 생활비를 벌기 위해 아르바이트라도 하고 싶은데, 아이들을 맡겨놓을 곳이 없어서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있다. 무엇보다 이모씨를 힘들게 하는 것은 아파트 단지 내의 달라진 분위기다. 예전에는 길에서 만나면 인사하고 웃던 이웃이 지금은 서로 외면하고 눈길을 피하기 일쑤다.

특히 법정관리인 측에서 비해고자 직원들을 앞세워 평택공장에 진입하면서 충돌이 생긴 이후 이웃들이 서로 '네 탓이다'면서 얼굴을 붉히기 때문에 아파트 단지 내에는 웃음과 활기가 사라졌다. 이모씨는 "예전에는 언니, 동생하며 친하게 지냈던 이웃이 남편이 해고자냐 비해고자냐로 갈린다. 예전에 친했던 이웃도 지금은 서먹해져서 눈길을 피하고 외면하게 된다"고 전했다.

'노-노' 갈등의 여파는 아파트 곳곳에서 들을 수 있다. 아파트에서 만난 한모씨는 "6월 25, 26일 공장에서 충돌이 있고 나서 친했던 사람들끼리 전화로 싸웠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105동에 사는 한 엄마를 아는데, 그날 일 때문에 친했던 사람과 싸웠다고 하더라. 충돌이 있기 전에는 서로 언니, 동생 하면서 친했는데, 이제는 아는 체도 안한다고 했다"고 말했다. 아파트 단지 내에 있는 부동산을 운영하는 대표는 "외딴 곳에 있는 아파트라서 원래 조용했는데, 쌍용자동차 파업으로 더 조용해졌다. 사람들이 모여도 쌍용자동차 파업에 대해 직접 거론을 하지 않는다. 아무래도 껄끄러워서 그런 것 같다"고 설명했다.

동광아파트 뿐만 아니라 쌍용자동차 가족이 많이 사는 아파트에서는 이와 비슷한 일들이 일어나고 있다. '쌍용가족대책위'(가대위) 이정아 대표는 "우림아파트(쌍용자동차 부근에 있다)에 사는 가대위 엄마가 6월 26일 충돌이 일어난 후 친하게 지냈던 비해고자 가족의 전화를 받았다. 전화로 그 사람이 '어떻게 하려고 일을 이 지경까지 만들었냐'고 따졌고, 이에 가대위 엄마가 '우리만 잘 먹고 잘 살자는 것이 아니지 않느냐. 1000여 명의 노동자는 어떻게 하느냐'고 하면서 서로 목소리를 높였다고 한다. 전화로 말싸움을 하다가 서로의 상황을 이해하게 되니까, 나중에는 두 사람 모두 전화기를 붙잡고 울었다는 이야기를 듣고 마음이 아팠다"고 설명했다. 가대위 가족들은 6월 25일, 26일 충돌이 있은 후부터 가대위 옷을 동네에서 입고 다니지 못한다. 비해고자 가족들의 눈초리가 예사롭지 않기 때문이다. 옷을 가방에 담아서 농성장에 가서 가대위 옷을 입고 있다. 농성이 끝나면 가대위 옷을 다시 벗어서 가방에 넣고 집으로 돌아온다고 한다. 노-노 갈등이 노동자 가족들의 일상에도 영향을 끼치고 있는 것이다.

살아남은 사람들은 그들대로 고충이 있다. 사측에서 일이 있을 때마다 출근 체크를 한다면서 불러내는 문자를 보내기 때문이다. 문자를 받고 나가야 되나 말아야 되나 고민하는 남편의 모습을 보는 아내들도 힘들기는 마찬가지다.

쌍용자동차 직원 아이들이 많이 다닌다는 동삭초등학교를 찾았다. 2003년 설립된 초등학교로 공장에서 가장 가까운 초등학교다. 33개 반에 1100여 명의 학생이 다니는데, 각 반마다 5~8명의 쌍용자동차 가족 아이들이 다니고 있다. 쌍용자동차 사태로 아이들은 어떤 영향을 받고 있을까.

아이들이 받은 상처 예상보다 커

"우리 반에도 쌍용자동차 가족 아이가 8명이 있다. 그런데 아직 어려서 그런지 내색을 하지 않는다. 이야기를 들어보니까 아이의 아버지들이 월급을 받지 못한지 3~4개월 정도 되는 것 같은데, 아직까지 불안해하는 아이들은 없다. 이 학교 선생님들은 해고자와 비해고자 사이의 불편한 관계가 학생들에게 퍼지지 않게 조심하고 있다."

1학년 1반 김형태 담임교사의 설명이다. 4학년1반 담임교사도 "아이들 사이에서 해고자, 비해고자를 나누는 분위기는 아직 없다"고 설명했다. 교사들도 아이들이 상처받을까봐 가족에 대한 질문을 삼가고 있다. 교사들의 설명대로 학교 운동장에서 노는 아이들의 얼굴에서는 쌍용자동차 사태를 느낄 수 없을 정도로 밝기만 했다.

하지만 아이들은 표면적으로 생활을 잘하고 있는 것으로 보일 뿐, 아이들이 받은 상처는 예상보다 컸다. 학교에서 보여주는 모습은 평상시 아이들의 모습과 큰 차이가 있다. 동광아파트 상가에서 미술학원을 운영하는 김 모 원장은 아이들이 어떤 상처를 받고 있는지 설명해줬다.

"아이들이 어려도 보고 듣는 것이 정확하고, 말은 안해도 상처가 크다. 초등학교 2학년 아이가 어느 날 여러 명이 옆으로 쭉 서 있는 그림을 그리고 나서, (사람들 가슴에) '결사반대, 결사항전, 같이 살자' 이런 문구를 써도 되느냐고 나한테 묻더라. 주말에 해고된 아버지가 있는 공장에 갔다가 경찰과 해고자가 대치한 모습을 보고 그린 것이었다."

학원장은 그 그림이 아이들에게 갈등을 일으킬 수 있다고 생각해서 그리지 못하게 했다. 또 한번은 학원차량이 쌍용자동차 공장을 지나는데 한 아이가 "오늘 우리 아빠가 출근했다가 쌍용자동차 깡패들(파업 중인 해고 노동자) 때문에 못 들어가고 그냥 왔다"는 이야기를 했다고 전했다. 이렇게 아이들의 행동과 말이 아버지가 해고자냐 비해고자냐에 따라 달라지고 있는 것이다. 김 모 원장은 "사람들 사이의 갈등을 해결하려면 하루 빨리 쌍용자동차 사태를 수습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쌍용자동차 공장 정문 앞에 설치되어 있는 가대위의 천막 농성장에 가면 아이들을 많이 볼 수 있다. 가대위 엄마들이 돈 때문에 어린이집에 보내지 못하고, 농성장으로 데려와서다. 또한 쌍용차 사태가 일어난 후에 엄마 곁을 떠나려고 하지 않는 아이들이 많아져서다. 경찰을 좋은 사람들이라고 생각했던 아이들도, 언제부턴가 경찰 모습만 보면 놀라고 피하는 경향도 생겼다.

가대위 이정아 대표는 "5살 아들을 어린이집에 보냈는데, 아빠가 농성에 들어간 후부터 내 곁에서 떨어지기 싫어했다. 아침에 농성장에 함께 와서 아이는 아빠가 있는 공장으로 들여보낸다. 경찰들과 싸워서 아빠를 보고 싶어하는 아이들은 공장에 들여보낼 수 있게 됐다. 큰 딸은 7살로 유치원에 다니는데, 언제부턴가 울음이 많아졌다. 그리고 아이들이 밤에도 잠을 푹 자지 못하고 새벽에 2~3번씩 깨는 버릇도 생겼다. 그리고 TV에 쌍용이라는 단어만 나와도 갑자기 TV 앞으로 가서 뉴스를 본다"고 설명했다. 동광아파트에 사는 한모씨도 "집에서 빨간 끈이 보이면 머리에 묶고 '정리해고 분쇄' 구호를 외치더라. 그 모습을 보고 너무나 속상했다. 엄마 욕심이라는 것이 있는데, 아이들이 동요를 부를 나이에 노동가를 따라 부르는게 너무나 싫다"고 전했다. 중학생 사이에서는 아버지가 해고자냐 비해고자냐에 따라 친구들도 나뉘었다는 이야기도 들을 수 있었다.

지금도 쌍용자동차 정문은 전경들로 인해 굳게 닫혀있다. '노-노' 갈등은 정부와 법정관리인 측에서 의도했을 것이라는 평가가 많다. 그들의 의도는 어느 정도 성공한 것처럼 보인다. 지역 공동체는 이미 죽은 자와 살아남은 자로 나뉘어 서로에게 상채기를 남기고 있다.

"반목은 쉽게 사라지지 않을 것"

만일 쌍용자동차 사태가 원만하게 해결된다면 서로 간에 생긴 갈등과 반목도 사라질까. 사람들은 "반목은 쉽게 사라지지 않을 것이다"면서 고개를 절래절래 흔든다. 가대위에서 활동하는 한 주부는 "우리들이 비해고자와 몸싸움을 할 때 나를 막았던 사람이 우리 아이들 이름을 지어줬던 간부였다. 남편과 얼마나 친하게 지냈던 사람이었겠나. 내가 그 꼴을 보고 기가 막혀서 '나에게 어떻게 이렇게 할 수 있느냐. 애들 이름을 바꿔버리겠다'고 퍼부었다. 난 그 일을 겪은 후에 평택이 지긋지긋해지더라"고 토로했다.

상하이자동차의 법정관리 신청 후 5월 6일 삼일회계법인은 쌍용자동차의 존속가치가 청산가치보다 더 크다는 결론을 내렸다. 다만 신규자금 조달 계획을 전제로 깔고 있었다. 이에 쌍용차는 2646명의 구조조정을 밝혔다. 1640명은 명예퇴직을 했고, 노조원 976명의 정리해고를 예고하고 있다. 이에 노조는 위기의 책임은 정부와 사측에 있기 때문에 노동자에게만 책임을 묻는 것은 부당하다고 반발하고 있는 것이다. 법정관리인은 9월 15일까지 회생계획안을 법원에 제출하고, 법원은 존속이냐 청산이냐를 결정하게 된다. '일방적 정리해고 반대, 자동차산업의 올바른 회생을 위한 범국민대책위원회' 이종탁 정책팀장은 "법정관리인 측이 노조와 협의없이 구조조정이라는 처방을 내놓으면서 사태가 여기까지 왔다는 비판을 피하기 힘들 것이다"며"아무래도 회생계획안이 통과된 후 노조를 배제하고 자기들 계획대로 회사를 운영하려는 노림수라고 생각한다"고 설명했다.

쌍용차 위기 책임은 정부에도 있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정부가 '상하이차의 지분을 소각하고 공적자금을 투입'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그것이다. 하지만 정부는 여전히 '구조조정을 하면 해결된다' 등의 발언으로 노조를 압박하고 중재에 나서려 하지 않고 있다. 정부의 적극적인 노력은 없고, 쌍용자동차 사태는 함께 땀흘렸던 '노-노' 갈등으로만 비쳐지고 있다.

쌍용자동차 정문 앞에서 발길 돌린 강기갑 대표



7월 8일 오후 민노당 강기갑 대표는 쌍용가족대책위를 방문했다. 가대위 사람들을 위로하고, 쌍용자동차 사태 해결에 적극 나서겠다는 약속을 했다. 그리고 공장에서 파업 중인 노조를 만나기 위해 발걸음을 정문으로 돌렸다. 경찰청으로부터 들어갈 수 있도록 협조하겠다는 약속을 받은 후였다. 그런데 정문 주변에 있던 사측 사람들이 강 대표의 출입을 막았다. 10여 명의 직원들은 어느 순간 40여 명으로 늘어났고, 강 대표에게 "해결 방안은 국회에서 찾아라"면서 출입을 방해했다.



사측 사람들 입에서는 "당신이 무슨 국회의원이야" "외부세력 물러가라" 등의 말이 쏟아졌고 정문 앞 분위기가 험악해졌다. 강 대표는 "똑같은 노동자인데 이래서는 안된다" "정치권에서 해결을 하려면 만나서 이야기를 들어야 한다" 등의 이야기를 하면서 설득하려고 했다. 하지만 사측 사람들은 요지부동이었다. 정문 앞에서 '국회의원' 강기갑 대표는 사측 직원들과 그렇게 30여 분 동안 말싸움을 하면서 대치했다. 결국 강 대표와 민노당 관계자는 사측 사람들에 막혀 공장안으로 들어가지 못했다. 강 대표는 이에 대해 "이렇게까지 막을 줄 몰랐다. 들어갈 수 있을 걸로 알았다. 일단은 되돌아가고 나름대로 역할을 해볼 것이다"면서 "사측 사람들의 저런 행위는 노동시장의 유연화를 내거는 정부의 하수인 역할을 하는 것이다. 노노간의 충돌이 정말 안타깝다"고 말하면서 허망하게 발길을 돌렸다. 이 장면을 바라보고 있던 가대위 사람들은 사측 사람들에게 고함을 치면서 길을 열어주기를 요구했지만 허사였다. 정문을 지키고 있던 경찰과 전경들은 이 현장을 지켜볼 뿐이었다. 노-노 갈등이 얼마나 심각한지를 단적으로 보여주는 현장이었다.

< 평택·최영진 기자 cyj@kyunghyang.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