쌍용자동차 해고노동자 가족에게 부침
서로를 감싸주고 보듬어주던 시간의 기억
2009-07-18 01시07분 조이영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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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98년 현대자동차 정리해고 반대 투쟁 |
울산에도 지난 밤 거친 바람과 함께 많은 비가 내렸습니다. 오늘도 어두컴컴한 걸 보니 비는 한동안 그치지 않을 모양입니다. 이 비가 누군가에겐 기쁨이 되기도 하겠지만 또 누군가에겐 지옥이 되기도 하겠지요. 저는 해마다 이맘때 내리는 장마 비를 보자면 98년 현대자동차 본관 앞에서 열린 정리해고 대상 노동자들의 집회를 잊지 못합니다. 그해 여름 내린 장마 비는 100년 만에 내리는 큰비라고 했습니다. 사람도 집도 떠내려가고, 사상자와 이재민도 엄청 많았습니다. 언론은 "함께 살자"고 투쟁하는 우리들을 향해 '이 장마에 웬 파업?' 하면서 마치 엄청나게 쏟아 붓는 비가 현대자동차 노동자들이 저지른 음모인 것처럼 호들갑을 떨었습니다. 지옥 같은 고통은 우리도 똑같이 겪고 있는데 말입니다.
양동이로 퍼 붓는 듯한 빗속에서 현대자동차 노동자들과 그 가족들은 "정리해고 반대! 고용안정 쟁취!"를 목이 터져라 외치고 또 외쳤습니다. 집회 장소에는 빗물이 무릎까지 차올랐지만 누구 한사람 자리에서 일어서지 않았습니다. 우린 반미치광이가 되어 어깨를 걸기도 하고 서로 부둥켜안기도 하면서 울다가 웃다가 날 밤을 새웠습니다. 다음날 좀처럼 열리지 않던 협상자리가 마련되었습니다.
거칠게 퍼부어대는 장마 비 때문에 더욱 힘겨운 날을 보내고 있을 쌍용자동차 노동자들을 생각합니다. 또한 50일 넘게 고공농성을 벌이고 있는 노동자들의 안전이 걱정되기도 합니다. 그리고 이리 뛰고 저리 뛰어도 속이 새까맣게 타들어 가는 가족들의 시린 눈물을 씻어주지 못하는 현실이 안타깝기만 합니다.
열심히 일만해 온 내 남편이, 아빠가, 혹은 형님이, 동생이 하루아침에 정리해고자라니… 회사는 "쌍용가족"을 앞세우더니 하루아침에 그 가족을 길거리로 내모는 파렴치한 짓을 저질렀습니다. 아주 작지만 소중한 일상을 빼앗겨 버렸습니다. 출근을 서두르고, 집안의 대소사를 챙기고, 가끔은 가족들과 외식도 하고, 친구들과 수다도 떨며 지냈던 작은 일상을 말입니다. 때론 부부싸움도 하고 그러면서 화해하고 아이들과 부딪치면서도 맛난 음식을 해먹이던 그 알량한 행복마저 무참히 짓밟아 버렸습니다. 세상에 비빌 언덕이라곤 부모밖에 없는 어린 자식들의 새까만 눈을 보고 있으면 눈물부터 앞 설 테지요. 설상가상, 어제까지 형 동생 하며 함께 소주잔 기울이던 동료들마저도 회사 측 농간에 놀아나는 걸 보면 이미 내가 누구인지도 모르는 분노가 치밀어 오를 것입니다. 이렇게 힘든데 이렇게 외롭고 고통스러운데 세상은 어쩜 이리도 무심하게 나를 비껴가는지… 엄마품을 떠나지 않으려 울며 보채는 어린것을 떼어놓고 이렇게 몸부림치며 울부짖어도 정부는 말 할 것도 없고, 언론도 지역사회도 행정기관도 정말 내 편은 없는 적막강산이겠지요. 저들은 오히려 살아남기 위해 발버둥 치는 우리를 놓고 온갖 유언비어와 이간질과 협박으로 더 깊은 수렁으로 자꾸만 밀어내고 있으니 말입니다. 심지어 "함께 살자"고 눈물로 호소하는 가족들 앞에서 공장을 나가라고 앞장서 시위하는 노동자들을 보고 있자면 "함께 죽자"는 심정이 들 것입니다. 무엇보다 가장 힘든 현실이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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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1년이 지나도 현대자동차, 쌍용자동차에서 바뀌지 않는 것이 있다. 98년 역시 사측 직원들은 '정상조업' 어깨띠를 두르고 노동자 가족들과 등지고 서 있다. 가족들 역시 정리해고 반대 피켓을 들었다. 2009년, 쌍용자동차에서도 사측 직원들은 '정상 조업'이라고 적힌 어깨띠를 두르고 노동자, 가족들과 맞섰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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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98년 현대자동차 정리해고 반대 투쟁 |
그렇습니다. 회사는 노동자들의 현실을 이렇듯 비참하게 만드는 돈과 권력을 갖고 있습니다. 돈을 앞세워 인간성을 말살시키고 동료애를 갈가리 찢어 놓고 있습니다. 한마디로 노동자들의 목숨 줄을 쥐락펴락하고 있지요. 회사는 오늘 구사대로 앞장세운 그 노동자들에게 조차 언제든지 자본가의 시퍼런 칼날을 들이밀 것입니다. 저들의 장난질에 본때를 보여주기 위해서라도 끝까지 싸우면 반드시 승리할 것이라는 희망 하나만은 버리지 않았으면 합니다.
참으로 길고 지루한 싸움이 될 것입니다. 저들은 굳건히 버티고 있는 노동자들에게 시시때때로 당근과 채찍을 내밀며 악랄하게 파고들어 옆 동료를 꾀어 낼 것입니다. 지쳐가는 사람도 생길 것이고, 수중에 돈도 떨어질 것입니다. 어떤 이들은 살길을 찾아 울며 겨자 먹기로 우리들 곁을 떠나기도 할 것입니다. 무언가를 계속 요구하는 철없는 어린것들에게 아무것도 채워 줄 수 없는 냉엄한 현실 앞에서 때론 좌절의 눈물도 흘리게 될 것입니다. 이웃의 싸늘한 눈초리도 이겨내야 하고, 늙으신 부모님의 하소연도 들어야겠지요.
정부는 어떻습니까? 정당한 노동자들의 투쟁을 깎아 내리는데 혈안이 되어 있습니다. 큰 범죄를 저지른 범죄자인 냥 취급하고, 무장경찰을 앞세워 조직깡패들이나 하는 짓거리도 서슴지 않고 있습니다. 언론은 이에 발맞춰 노동자들의 요구는 슬그머니 숨겨버리고 회사 측과 정부의 말만 앞세우고, 노동자들이 양보해야 한다고 우기고 있습니다. 양보가 무엇입니까? 내게 남은 것을 조금 나누는 것, 힘든 사람에게 자리를 내어주는 것입니다. 하지만 가진 것 하나 없이 몸뚱이 하나만으로 살아온 우리 노동자들에겐 양보할 것이 없습니다. 갈 곳도 없으니 비켜 줄 자리도 없는 것입니다. 우리 노동자에게 양보는 항복입니다. 항복문서를 받아드는 순간 회사는 이제 노동자에게 노예가 될 것을 강요할 것입니다.
하지만 아무리 모질고 가혹한 탄압이 가로막을지라도 우리는 반드시 이겨 낼 것임을 믿습니다. 힘들었지만 서로를 감싸주고 보듬어 주던 지난 시간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싸움에서 이기는 길은, 그 누구도 아닌 나와 우리들의 단결이라는 것을 아시리라 믿습니다. 멀리서 나마 여러분의 승리를 기원하겠습니다. 힘내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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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9년. '해고는 살인이다'고 외치는 쌍용차 노동자 가족들. |
덧붙임
조이영자 님은 98년 현대자동차 노동자, 가족들이 정리해고 반대 투쟁을 할 당시 가족대책위 의장으로 활동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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