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되는 대로 꼭 올게. 맛있게 먹어. 난 잘 있어. 애들도 잘 있고. 약 잘 챙겨먹고… 파이팅! 끊을게.”

70미터 굴뚝 위의 올려다보며 쌍용차 김을래 부지부장의 아내인 윤씨는 환한 목소리로 남편과 전화통화를 했다. 간결하지만 그리움과 안타까움이 묻어나는 통화를 마치자마자 윤씨는 바로 얼굴이 어두워져 버렸다. 남편이 굴뚝으로 올라가다 무릎이 찢어져 3바늘을 꿰맸단 소리도 언론을 통해 알았다. 그날 윤씨는 한 없이 울었다고 했다.

동료들이 굴뚝으로 점심을 올려준다는 소리를 듣고 15일 낮12시경 윤씨는 굴뚝 아래로 한 걸음에 달려왔다. 윤씨는 남편과 굴뚝 농성자들의 건강이 걱정되어 가방에 과일도 몇 개 넣었다.

아이들은 학교에서 수업중이라 함께 오지 못했다. 김 부지장과 윤씨는 아이들에게 아빠가 농성한다고 말하지 못했다. 걱정할까봐 그랬다. 그런데 큰아이가 TV를 보다 알게 되었고, 아이들도 펑펑 울었다. 아이들은 천막에서 아빠가 투쟁하는 모습만 봐도 펑펑 울었다고 한다.

노조는 이날 단출한 점심 식사에 노조 창립 기념품인 단체티를 가방에 넣어 굴뚝 위로 올려 보냈다. 노조는 매년 창립 기념품으로 조합원들에게 1만원 상당의 선물을 지급한다. 7월31일이 창립일이지만 2,405명의 정리해고에 맞서 싸우고 있는 지금, 기념품을 앞당겨 제작해 조합원들에게 나눠주었다. 노동자들이 투쟁할 때 단체티를 입을 예정이라고 한다.

윤씨는 처음에 언론사들의 카메라를 보고 부담스러워 했다. 처음엔 인터뷰 자체도 거부했다. 대화를 나누다보니 고개가 끄덕여졌다. 윤씨는 얼굴과 이름이 공개되는 것에 대한 두려움이 아닌, 언론에 대한 불신과 남편의 투쟁이 왜곡되는 것을 두려워했다.

“언론은 회사편만 드는 것 같다. 언론에서 보니까 법정관리 들어가고 회사는 무조건 구조조정만 말하더라. 회사는 ‘지난 얘기 하지 말자’ ‘회사를 살려야 직원이 산다’ ‘정리해고 해야 한다’고 했다. 회사에서 하라는 대로 하라는 얘기다. 지금도 하루살이 월급쟁이인데 40대 중년이 지금 회사에서 짤리고 밖에 나가 무엇을 하겠냐. 그리고 법정관리 상황이면 정부가 책임져야 하는 거 아닌가. 노동자 2천명이 넘게 짤리게 생겼는데 정부는 도대체 무엇을 하는지… 자리에 앉아서 월급만 받아먹고… 우리들은 푼돈만 받고…”

남편이 굴뚝으로 올라간 것은 전적으로 회사와 정부 책임이라고 윤씨는 조목조목 따졌다. “노조에서 자구안을 냈다고 했다. 다 같이 살자고 하는 게 잘못된 요구인가? 돈을 더 달라는 것도 아니고, 일 할 수 있게 서로 나눠서 일하자는 건데 회사가 무슨 의도로 그러는지 모르겠다. 도대체 생각이 있는 회사인가”라고 분노하며 말문을 잇지 못했다. 윤씨의 얼굴은 벌겋게 상기되어 버렸다.

다시 말문을 이은 윤씨는 남편이 굴뚝에 올라가고 경영진을 내가 한 번 만나볼까 하는 생각도 해 봤다고 했다.

“애 아빠 노조 집행부 되자마자 5,6개월 넘게 집에도 못 들어왔다. 애들도 한창 사춘기이고, 꿈을 갖고 크는 아이들인데 삶이 불안하니까 스트레스 받는다. 학원 하나 못 보내고. 애가 오죽하면 엄마한테는 신경쓸까봐 말도 못하고 담임선생님 붙잡고 얘기하고 했을까… 제발 회사와 정부는 노동자들의 말을 들어 달라. 무조건 노동자들의 투쟁이 나쁜 것이 아니라 이유가 있어 싸우는 것이다. 애 아빠를 가족의 품으로 돌려 달라.”

윤씨는 한 동안 굴뚝 아래에서 자리를 뜨지 못했다. 내내 서있다 사람들이 하나둘 흩어지니까 굴뚝 아래 주저앉아버렸다. 한참을 앉아있던 윤씨는 굴뚝을 등지고 무거운 걸음을 옮겼다. ‘주말에 비가 온다는데 굴뚝 위의 우리 남편 어떻하나’ 하는 고민과 함께…….

덧붙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