쌍용자동차 해고 노동자의 아내
전 소박한 노동자의 아내입니다.
저 멀리 경상도에서 무조건 남편만을 믿고 시집 온지 언 15년된 소박한 노동자의 아내입니다.
전 정치이념도 기업이념도 모릅니다.
제가 단 한 가지 아는 건, 저의 가족, 남편과 아직 철부지인 두 딸입니다.
이 세상 모든 아내이자 엄마들과 마찬가지로 저 역시 저의 가족을 위해서라면 제 몸 세포 하나하나까지도 반응하는 내 남편의 아내이자, 두 딸의 엄마입니다.
힘겨운 세상 살아가느라, 우리 가족 말고는 다른 건 생각할 시간도, 여력도 없는 억척스러운 대한민국 아줌마입니다.
못쓰는 글이지만 너무나 억울하고 원통하여 이 글을 쓰니 부디 읽어 주시고 우리가족에게 억울한 노동자에게 힘이 되어 주십시오.
4개월 전, 아직 날이 밝기 전인 새벽녘, 밤새 뒤척이며 잠을 못 이뤘던 남편의 밥상을 차렸습니다. 말없이 고개를 떨구고 식사를 하고 있는 남편을 보며, 무슨 일인지 묻고 싶었지만, 그럴 수가 없었습니다. 힘들어도 아내와 두 딸한텐 항상 괜찮은척, 당당한 모습을 보였던 당신, 도대체 무엇이 그렇게 그 사람의 어깨를 짖누르고 있는지 묻고 싶었지만 그럴수가 없었습니다.
법정관리니 뭐니 하며, 회사가 어렵다는 것은 언론이나 귀동냥으로 들었지만, 해고자 명단이 나왔다는 소문이 돌고, 일하고 싶어서, 그들의 가족을 지켜내기 위해 파업에 들어갔다는 소식에 가슴이 덜컹했습니다. 그래도, “내 남편은 아니겠지,, 아닐 꺼야.. 괜찮을 거야..” 애기 아빠가 얼마나 뼈빠지게 일만했는지 잘 알기 때문에 약간의 희망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손이 부르르 떨렸습니다. 심장이 멎는 듯한 느낌이 이런거구나.
아무런 준비 없었던 우리 가족에게 사형선고나 다름없는 남편의 해고통지서에 한 동안 멍해 아무것도 할 수가 없었습니다. 아파트 단지 내에 많은 직원 가족들이 거주하고 있어서, 애기를 들쳐 업고 하얗게 질린 얼굴로 문을 두드리는 옆집 애기 엄마에 정신을 차렸습니다. 어디서 들었는지 어떤지 눈치 빠른 작은 딸은 저의 손에 들린 노란봉투를 바라보며
“엄마, 아빠 해고됐어?” 합니다.
피아노 치는걸 좋아해서 7년전부터 다녔던 피아노 학원.. 몇 달째 나오지 않은 남편의 월급에 가정 형편이 어려워 몇 달만 있다가 다시 등록하자던 학원을 영영 못 갈까봐 눈을 뚱그렇게 하고 쳐다보는 철없는 애를 보다 참았던 눈물이 왈칵 쏟아집니다. 엄마의 눈물에 영문을 아는지 모르는지 작은 딸도, 그리고 옆에 서있던 옆집 애기엄마도 펑펑 울었습니다.
무거운 발걸음으로 해고통지서를 들고 파업농성을 하고 있는 남편을 찾았습니다.
저의 떨리는 손에 쥐어진 노란봉투를 침통한 표정으로 한참을 바라보더니, 대수롭지 않은 듯 말합니다. “왜 받았어? 받지 말지..” 애써 담담한 표정 지으며, 아무일 아닌것처럼 말하는 남편을 보며 왜 그렇게 눈물이 나는지요..

15년을 살을 맞대며 살았는데, 당신의 숨소리만 들어도 눈빛만 봐도 알수 있는데..
누구보다 당신이 가장 힘든 이 순간까지 가족에겐 당당한 모습을 보일려는 모습에 다시 한번 눈시울이 뜨거워집니다.
비통하고 또 비통하고 비통합니다! 억울하고 억울하고 또 억울합니다!
가족을 잃을까봐 비통하고, 한평생 직장을 잃어서 원통하고, 15년 정을 쌓아온 이웃을 잃어서 억울합니다.
‘살아도 함께 살고 죽어도 함께 죽자’던 구호도 법정관리인의 교활한 이간질의 책략에 나뒹굽니다. 해고자 천여명은 옥쇄파업으로 모두가 함께 일하기를 희망하며, 해고를 당하지 않은 사천여명은 경영진 편에 서서 파업을 중단하라 외침니다.
경영진의 교활한 이간질에 어제 형제를 자칭하던 그들이, 그들만의 싸움으로 몰아갑니다.
살자(子)와 죽을자(子).. 소위 살생부가 공표되기 전까지 친한 직장동료로, 살가운 이웃으로 얼굴 마주보고 지내던 한 아파트의 주민들 역시 둘로 갈렸습니다. 마주치기 싫어들 하지만 어쩔 수 없이 마주치면 상대방의 얼굴엔 서로에 대한 원망과 증오로 가득합니다. 영화속에서나 상상할수 있는 ‘상대가 죽어야 내가 산다’ 라는 생각이 지배된 지옥같은 마을에 사는 기분입니다. 하루를 살아도 생각만 해도 끔찍한 마을에 우리 가족은 살고 있습니다. 배신자 : 공멸의 원흉, 배신자의 가족 대 공멸의 원흉의 가족으로... 서로를 헐뜯으면서...
남편의 해고통지서를 손수 받은 저의 입장에서 산자(子)의 심정을 헤아리지 못하는건 아닙니다. 한 순간에 생사고락을 함께하던 직장동료를 그리고 작은 슬픔도, 작은 기쁨도 함께 나누던 정다운 이웃을 한 순간에 내치는 그들이 원망스럽기도 하지만, 그들 또한 자기 가족을 위해 어쩔수 없다는 생각에 착잡한 심정입니다.

해고를 당하지 않은 그들에겐 희망이라도 있지만, 해고를 당한 천여명의 근로자와 가족들에겐 희망도 미래도 이웃도 없습니다. 남은 거라곤 앞날에 대한 걱정과 절망섞인 한숨뿐입니다.
일방적인 해고통지서 종이 한 장에 내 남편이, 우리 가족의 하늘이 무너져 내릴려고 합니다. 가진 것이라곤 몸뚱아리밖에 없는 그들이 마지막 결전지로 선택한 도장공장.. 정전기 하나라도 폭발의 발화가 될 수 있다는 그곳으로 보내는 아내의 마음은 어떠했을지 상상해 보십시오..“사고라도 나면 어쩌지” 하는 두려움.. 혹시, 혹시나 영원히 못 돌아올지도 모르는 공포감..
모두다 어려운 현실에서 현 정부에서 내세운 ‘일자리 나누기’는 도대체 누구를 위한 것입니까? 제가 남편을 하늘이라고 생각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직장을 가족을 지키기 위한 전부라고 생각하는 노동자들에게 직장해고는 그들의 전부를 빼앗는 것입니다. 즉 살인입니다.
‘그들의 전부를 빼앗고 또 다른 사람에게 일자리를 준다’ 이게 일자리 나누기의 이념인가요?
알고 있습니다. 영혼을 팔아먹은 일부 언론은 우리들에게 냉소적입니다. 더구나 중국 자본에 대해 곱지 않은 시선을 가졌던 일부 국민들의 시선도 차갑다는 것을요.
하지만, 누군들 상하이차 자본 밑에서 일하고 싶었겠습니까??
내 남편과 동료들은 쌍용 자동차 노동자로서, 대한민국 국민으로서 계약 불이행과 기술유출 등에 대해 목이 쉬도록 외쳤지만, 눈먼 정부나 영혼 없는 언론은 남의 나라 얘기인 듯 관심을 가져주지 않았습니다. 그들의 횡포를 외치다, 외치다 목청이 터져 죽지 않은 대가로 저희 남편과 노동자에게 돌아온 해고통지서..... 정녕 열심히 일한 노동자는 죽어야한단 말입니까?.....
정부는 모른다고 합니다. 법원은 뭔 눈치를 보는지 상하이차는 잘못이 없다고 합니다. 중국자본은 당초 그들이 원했던 모든 것을 가지고 자기 나라로 돌아갔습니다.
부실 정부와 부실 경영이 만들어 놓은 사태에 대한 책임을 묵묵히 일만해온 내 남편과 노동자에게 희생을 강요합니다. 죽으라 합니다..
행여 파업중 몸이라도 다칠까 걱정스러워 하는 나에게 애써 미소 짓는 남편의 모습을 떠올리며 4개월 전 새벽 남편의 어깨를 그토록 무겁게 짓누르고 있는 건, 파업의 힘겨움, 해고의 압박 보다는, 우리 가족을 지켜내야 한다는 당신 마음의 무게였음을...이제조금은 알것같네요...
울고 울어도 눈물이 납니다.
하지만.. 마음을 다잡고 응원 할께요!!!!
열심히 투쟁하는 내남편.. 노기상 화이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