총파업투쟁 18일차 - 쌍차 지부, 정리해고 철회, 노정교섭 요구, 사측 노-노갈등 조작
1,000여명 정리해고가 과연 쌍차 정상화 방안인가?
사측 관리자 쌍차 평택공장 후문에서 500명 모여 쌍차 회생을 위한 결의대회 개최, 노-노 갈등 조장
정리해고 단행한 평택공장에서는 관리자들이 공장 진입을 위하여 후문에서 500여명이 모여 궐기 대회를 개최하였다. 사측은 파업 미참가 조합원들에게 회유와 협박으로 출근체크로 위협하여 평택공장 후문에 대기시켜 노-노 갈등을 조장하였다.

사진 출처 : 미디어 충청
쌍차 정상화를 위한 궐기대회라고 하지만 과연 쌍차 정상화시키기 위하여 누가 나서고 있는가? 과연 쌍차 지부는 회사를 망하기 위한 파업투쟁을 하고 있는 줄 아는가? 절망퇴직 1,700여명, 정리해고 1,000여명 이도 모자라 더 사람을 자르려는 사측이 과연 정상화 의지가 있다고 말 할 수 있는가? 공장에서 미래를 꿈꾸고 묵묵히 일한 노동자가 잘려나가는 것이 과연 정상화라는 말인가? 뭍지 않을 수 없다. 노동자 피와 땀을 팔아 회사를 정상화시키겠다. 이는 나만 살겠다는 이기적 발상에 지나지 않는다.
함께 살자! 총고용 보장을 외쳤지만 쌍차 지부에 돌아온 것은 절망퇴직과 정리해고 그리고 회사 분사계획서이다. 이도 모자라 정리해고 대상이 아닌 파업 미참가 조합원에게 개별동의서로 압력을 가하며, 회사를 살리기 위한 방안이라 뻔뻔스럽게 말하는 것도 모자라 20년 공장에서 한솥밥을 먹은 동료들을 이간질 시키는 행동이 오늘 아침 9시에 평택공장 후문에서 벌어졌다.
과연 이것이 회사 정상화인가? 노-노 갈등을 부추겨 서로간의 싸움을 만들려는 관리자들의 행태에 분노를 머금지 않을 수 없다. 대부분 형님 동생들이다. 비록 함께 파업대오에 함께하지 못하였지만 평택공장 곳곳에서 쌍차라는 이름으로 짧게는 10년에서 길게는 20년 이상 같은 작업복을 입고, 현장에서 희노애락을 같이 보낸 동료들이다. 이런 우리 노동자들에게 비수를 꽂은 사측 관리자들 너희가 회사 정상화를 말할 자격이 없는 존재들이 노-노 갈등으로 노동자를 분열시키는 책동을 자행하였다.

사진 출처 : 미디어 충청
쌍차 정상화를 말할 자격이 없는 회사 관리자들의 행태에 그 대오에 참여한 노동자들은 분노를 참을 수 없는 아픔을 갖고 왔다. 파업 미참가 조합원들은 서로 아는 형과 동생들을 보며, 실토를 하며 뒤로 한 발 물러서 죄스러움을 표현하였지만 사측은 뻔뻔스럽게 관리자를 앞세워 만장과 플래카드를 들고 궐기대회를 하였다.
파업 미참가 조합원들은 총파업 대오를 보고 미처 얼굴을 들 수 없어 뒤에 서는가 하면 인근 공원에 그리고 도로변에 모여 있었다. 총파업 대오가 나오지 않았으면 아마도 궐기대회에 참석할 뻔했다는 파업 미참가 조합원도 있었고, 회사가 출근 체크를 한다고 나오라 해서 왔다는 조합원도 있었고, 궁금해서 나왔다는 조합원 등 다양한 반응을 보였다.
궐기대회 시작 전 노조 간부 일부는 발언을 요청했지만 회사가 “안에 있는 사람들 대부분은 정리해고 통보를 받았기에 오늘부로 직원이 아니다. 갑작스런 요청은 받아들일 수 없다”며 거부. 잠시 옥신각신 하기도 했다.
곽상철 전무는 “차량생산을 하는데 불법행위로 라인에 들어갈 수 없다. 쌍용차 회생을 위해 첫째는 성공적으로 구조조정을 해야 하고, 열정과 의지를 모아 성공적으로 결의대회를 해야 한다.”고 밝혔다.
곽 전무의 발언 뒤 울분을 토한 몇몇 조합원들은 “집어치워라” “중앙노동위원회조차 합법파업이라고 했는데 우리가 무슨 불법파업을 벌이고 있냐”는 원성이 튀어나오기도 했다.
사측이 주도로 이루어진 평택공장 후문 궐기대회는 이렇게 오전 9시부터 시작하여 대략 1시간 30분간의 시간을 갖고 마무리되었다.
오전 11시 쌍차 지부, 비정규지회, 가족대책위 기자회견 개최
정리해고 철회, 노정교섭 요구안을 갖고 기자회견을 개최하여 쌍차 지부의 공식요구안을 발표하였다.

기자회견에서는 주요하게 6월 8일 1,000여명 정리해고 즉각 철회, 상하이 자본 51.33%에 대한 즉각적인 주식 소각을 통한 공적자금 투입으로 쌍차 공기업화, 노정 교섭요구를 내걸고 기자회견을 개최하였다.
쌍차 지부 희망퇴직 1,700여명, 정리해고 1,000여명이 진행된 상황에서 4월 7일 제시한 쌍차 지부 회생(안)은 무의미하며, 그 회생(안)은 전체를 대상으로 하였을 때 작성한 안이기에 즉각 폐기한다는 입장을 발표하였다. 그리고 사측으로 대표되는 바지사장은 더 이상 실권이 없기에 사측과의 협상은 분명 없음을 밝히고, 상하이 먹튀 자본에 대한 즉각적 주식소각을 통해 주채권은행인 산업은행의 공적자금 투입을 통한 쌍차 공기업화를 요구하였다.

또한 6월 1일 기자회견에서 발표된 내용들이 언론들이 받아 쌍차 지부(안)에 대한 정확한 설명은 없고, 소설과 같은 시나리오를 쓰고 있어 이에 대한 입장을 발표한 것으로 볼 수 있다.
이날 기자회견에는 많은 기자들이 참석하였다,

오후 공권력에 대비한 전술훈련을 진행하였다. 공권력 투입에 대비한 훈련에 있어서 무엇보다 전체 대오의 흔들림 없는 단결을 위하여 투쟁의 대오에 대한 결의를 높이기 위한 전술 훈련을 통하여 공장점거 파업 승리 쟁취를 위한 집단 훈련을 가졌다.
정리해고 통보가 발효되는 8일 총파업 투쟁 승리를 통하여 가족에게 돌아가겠다는 열의들이 전술훈련에 있어 더욱더 힘차게 전개하는 힘으로 작용되었다. 이날 전체 대오는 흔들림 없는 전술 편성을 통하여 공장 점거 사수 투쟁이 결코 흔들림 없음을 보여주었다.
연대투쟁을 다지다. 금속노조 현장순회 투쟁과 서울 상경 삼보일배 투쟁 전개...
기아차 화성공장에 쌍차 투쟁 지지 호소와 연대를 위한 현장 순회투쟁이 전개하였다. 기아자동차 정규직, 비정규직 노동자들에게 쌍차 현 투쟁상황을 알리고, 기아차 화성지회가 나서서 이 투쟁 엄호하고 지지 핼 줄것을 촉구하였다.
기아차 화성공장의 반응은 뜨거웠다. 금속노동자는 하나라는 기치아래 쌍차 투쟁에 최우선적으로 나설 것을 결의하며, 이 투쟁에 기아도 동참하겠다는 의지를 다졌다. 쌍차 투쟁은 이미 금속노조 투쟁으로 받아 않고 있음을 확인하는 자리였다. 이후 더 많은 금속사업장에 방문하여 아래로부터 금속노조 15만 조합원 총파업투쟁 조직화를 위하여 쌍차지부의 연대는 계속될 것이다.

쌍차 실천단 민주노동당 강기갑 대표와 함께 삼보일배 실천활동 전개하였다. 민주노동당에서 현 시국상황에 대하여 읍소하는 차원에서 벌어진 덕수궁 대한문부터 청와대 앞까지 삼보일배 투쟁을 전개하고자 하였다. 그러나 공권력은 무엇이 무서웠는지 이에 대하여 일관되게 막기만 하였다.

시민들의 지지를 받으면서 진행된 삼보일배 투쟁.... 쌍차 또한 현재 국면에 대하여 시민들에게 알리기 위하여 삼보일배 투쟁에 동참하였다. 이날 늦게까지 전개된 삼보일배 투쟁에서 쌍차의 문제를 알리는 시금석이 되었다.
촛불 문화제가 정리해고 통보된 8일날... 의미심장한 촛불문화제....
김남섭 연구동 대의원의 사회로 촛불 야간문화제가 개최되었다. 사회자 발언에서 오늘부터 촛불문화제 사회는 현장 조합원들이 돌아가면서 보도록 했다는 촛불 문화제 개최의 형식에 대한 설명이 있었고, 오늘 사회자는 제가 보지만 내일은 또 다른 동지가 보게 될 것이다. 조합원들 스스로 만들어가는 촛불문화제 판에 대한 설명을 해주었다.

첫 번째 연대발언자로 나선 현대차지부 정영규 아산위원회 위원장은 동지들의 강철 같은 대오가 정리해고를 분쇄하고 노동자가 공장의 주인으로 우뚝 설 수 있을 것이라는 판단이 든다. 저는 쌍용차에 자주 오지는 못했다. 엊그제 문화의 밤에 왔을 때, 개인적으로 가슴 뭉클한 장면을 많이 보고 갔다. 그 첫 번째가 가대위 동지의 발언이었는데, 절대로 공장을 떠날 수 없다는 말이었다. 저도 현대차 소속이지만 똘똘 뭉쳐서 정리해고 없는 세상을 만들어가야겠다고 결심했다. 우리도 98년에 아픈 경험이 있다. 이 투쟁 반드시 승리하고 공장의 주인으로 우뚝 서도록 하자는 결의를 밝혔다.
이어 금속사업장 순회선전전 보고 자리에서는 기아차 화성공장 순회선전전 갔던 동지들 모두 나오셔서 보고를 자리가 마련되었다. 보고자리에 발언자로 나선 이종수 대의원은 투쟁 보고에서 이렇게 많은 동지들 앞에 서기는 처음이다. 김남섭 동지 말대로 솔직히 떨린다. 우리는 지난 금요일과 오늘까지 두차례 기아차 소하리공장과 화성공장을 다녀왔다. 소하리공장에 갔을 때 우리와 비슷한 여건이었고 공장 크기도 조합원 5,700 규모로 비슷했다. 처음에는 냉담했으나 우리가 현장 투어를 하는 동안 조금씩 조합원들이 “힘내라” “고생한다”고 말을 해주었다. 어느 조립라인에서 한 조합원이 급하게 급조된 대자보를 뜯어 뒷면에 “함께 하지 못해 미안하다. 힘내라”고 적어서 주셨다. 그 한마디 글에 큰 용기를 얻었다. 이렇게 연대해 주는 동지들이 있어서 더욱 힘을 낼 수 있었다.

오늘 또 한번 화성공장에 다녀왔다. 소하리공장보다 훨씬 크고 상당히 넓었다. 그쪽 조합원들이 13,000여명, 식당이 20개가 넘는다. 우리는 2곳에서 선전전을 했다. 처음에는 소하리공장과 비슷한 생각이 들었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아, 이건 아니다” 이런 생각이 들었다. 왜 그랬냐면, 우리는 공장이 너무 커서 현장순회도 할 수 없었고 무작정 식당 앞에 섰다. 거기서 우리가 닥친 싸움과 굴뚝 농성에 대해 얘기했고, 열심히 싸우고 있으며 1천명 넘는 조합원이 무장하고 어떤 공권력도 막아낼 자신이 있으니 제발 연대해서 이싸움 꼭 승리하자고 호소하고 부탁했다. 처음에는 냉담하게 생각하던 조합원들도 조금씩 우리들에게 수고한다는 말을 전해주셨다. 연대라는게 그런것 같다. 처음엔 몰라도 조금씩, 조금씩 다가와주고 함께 얘기해준다면 우리들 그 힘을 받아 이 싸움 반드시 승리하리라 믿는다. 우리 대의원 3명과 삭발한 17명의 동지들, 2차례의 현장 선전전을 가면서 늘 갈 때마다 우리가 쌍용의 대표다, 연대를 우리가 끌어내야 한다는 각오로 갔다. 우리 조합원 20명, 갈 때마다 한치의 흔들림없이, 흐트러짐없이 진짜 열심히 투쟁했다.

여기 모여계시는 조합원 동지들! 우리는 지금 등산을 하고 있다. 가장 높은 산꼭대기를 가기 위해서는 그전에 높고 낮은 곳에 다니겠지만, 가장 높은 곳에는 힘들고 경사가 많이 져있다. 그 힘든 것을 외면한다면 결코 정상에 다다를 수 없다. 조합원 동지들! 정상에 오를 그날까지 한치의 흔들림없이 앞에서 끌고 뒤에서 밀며 간다면 정상에 기필코 올라갈 수 있으리라 믿는다.
조합원 동지들! 화성공장에서 조직실장이 이렇게 얘기했다. 이 싸움 시작했으면 지도부를 믿고 가야 한다고! 우리들의 대장은 한상균 지부장 동지이다. 우리들 대장 믿고 이 싸움 이겨서 후회없이 싸우겠다는 각오로 한명의 낙오자 없이, 공권력이 와도 막아내고 승리해서 가정으로 돌아갈 수 있도록 힘을 내자로 발언을 마무리 지었다.
발언이 끝나자 사회자는 마이크를 이어 받아 오늘 사측 궐기대회가 있었다. 창원지회 선전부장 동지를 모시고 어떤 일이 있었는지를 들어보도록 하자라고 이야기하며 이규홍 동지 발언 자리로 마이크를 옮겼다.
발언자로 나선 이규홍 동지는 어제와 그제 사측이 비대상자와 구사대를 동원한다는 얘기를 듣고 긴장을 했다. 새벽부터 있었는데 아침녘부터 모이기 시작했다. 그런데 보니까 모두 끌려나온 사람들이지 자발적인 사람들은 별로 없었다. 직장들 포함해서 몇 조합원 만났는데, 사진을 찍으려 하니까 모두 도망가더라. 내 카메라가 100미터까지는 당길 수 있어서 사진을 찍었는데, 처음부터 끝까지 그들은 먼발치에서 바라만 볼 뿐 합류하지 못하더라.

창원지회 올라온지 17일차 되었다. 보다시피 처음에는 60~70으로 시작했는데, 계속 올라오는 조합원들이 굉장히 많았고, 물론 그 중에는 일부 내려간 대오도 있었다. 지회장님도 고민하고 간부들도 고민했으며, 이제는 한 사람의 낙오도 없이 버티자고 결의했다. 창원지회는 분명히 선봉에 서겠다. 공장점거파업이 승리하도록 끝까지 투쟁하며 촛불 문화제에 모인 동지들이 결의를 해 줄 것을 촉구하였다,.
이어 노동자수 김성만 동지의 구수한 입담 어린 노래공연이 어어졌다, 김성만 동지의 공연이 끝나자 오늘 문화제의 하이라이트 임원 동지들의 노래공연의 순서가 있었다.
임원 동지들의 노래 공연에서 임원 또한 우리와 같은 노동자라는 사실을 알아나가며, 늘 결단과 고뇌를 하는 사람이 아닌 우리와 같이 어울리고, 함께 고민하는 인간적인 면들을 발견하였다. 조합원들에게 다가가는 노동자서의 모습에 많은 조합원들이 감동을 하였던 것 같다. 임원도 무너질 수 있음을 철저히 보여주여 많은 촛불 참가한 조합원들에게 임원의 강인함 보다 인간적 모습을 보여주었던 자리였다.
임원 동지들 노래공연 끝나고 창원지회장은 발언이 이어졌다. 창원지회장은 돌아가는 현실, 특히 창원에 대해 얘기해 보고자 한다는 발언을 하였다. 창원을 떠나온지 17일차, 여기는 변한게 없는데 창원공장은 많은 것이 변했다는 소식을 듣고서 착잡하다. 반드시 승리해서 창원공장으로 돌아가야겠다는 각오를 새롭게 한다. 지금 창원에는 밤이면 파티가 벌어진다고 한다. 관리자들의 파티, 산자들의 자축파티 .... 우리는 잠시 17일 평택에 올라왔을 뿐인데, 우리들은 직원이 아닌 이방인들로 분류가 되었고, 산자들의 축하파티는 사원아파트 할 것 없이, 옆집에 홀로둔 아내와 자식들 아랑곳않고 옆에서 파티가 열린다는 소식에 가슴이 찢어진다. 창원공장 와보신 분 계시면 알겠지만, 왼쪽의 엔진 1공장, 오른쪽의 엔진 2공장 사이의 중앙도로 아치에 문구가 새겨져 있다. “행복이 머무는 곳, 꿈의 창원 엔진공장”이라고 되어 있다. 숨쉬기조차 어려운 현장을 다시 복원하는 방법을 고민하며 잠을 이룰 수 없다. 그동안 후방에서 좀 편하게 있었다면, 여기 와서는 최선봉에 서겠다. 창원지회 동지들끼리 약속한 것이 있다. 창원은 계획도시라서 공원이 즐비하다. 우리는 이 투쟁 승리하더라도 창원 공원에서 1박 더 점거파업을 진행할 것이다. 꼭 승리하자!
창원지회장의 발언이 끝난 후 자유발언으로 자연스럽게 이어졌다.
자유발언자로 나선 쌍차 정비지회 박광열 분회장은 광주에서 올라온지 18일 되었다. 회사의 갈라치기에 의해서 현장 조합원들이 분열되고, 이 자리까지 와서 2주 하고도 며칠이 흘렀다. 평택. 창원공장 동지들 분사가 무엇인지 잘 모르실 것이다.
오늘부로 정비 분사업체 대표를 비롯해 직원들이 투입이 된 것으로 안다. 쟁의기간에는 함부로 대체근로를 할 수 없다. 그러나 분사라는 이름으로 직, 반별로 분사 대표와 직원들이 전국 곳곳에 들어섰다. 쌍용차 직영 서비스센터 4개 뿐이다. 경쟁사의 경우 대도시에 모두 있는데 말이다.
그런데 이제 나가라고 한다. 그것도 비정규직으로 가라고 한다. 정비의 경우 이제 파업이 끝나면 우리는 돌아갈 자리가 없다. 조립공정의 경우 생산이 재개되면 갈 자리가 없지만, 우리는 이미 분사가 들어왔기 때문에 갈 자리가 없다. 정리해고·분사가 철회되기 전까지는 결코 현장으로 돌아갈 수 없다. 따라서 우리는 결코 이 싸움 질 수 없다.
또하나, 회사는 분회를 모조리 없애겠다고 한다. 우리는 자주적 노조이기 때문에 우리 스스로 결정하기 전에는 분회를 해산할 수 없다. 그런데 오늘자로 분회 사무실 폐쇄하고 집기를 들어내겠다고 한다. 이런 작태를 하는 것이, 법원으로부터 임명받은 관리인들이 하고 있다. 정리해고만이 아니라 분사를 반드시 철회시켜야 한다.
회사가 마음대로 집기를 빼가고 사무실을 폐쇄하는 일 있을 수 없다. 만일 그렇게 나온다면 노조의 힘으로 반드시 박살내야 한다. 정리해고 반드시 철회해야 한다. 분사 반드시 저지해야 한다. 노동조합 반드시 지켜야 한다. 끝까지 투쟁해서 정리해고 분쇄하자고 호소하였다.
두 번째 발언자로 나선 창원지회 변종기 조합원은 나는 소위 ‘산자’이다. 왜 내가 이 자리에 왔냐, 나는 ‘산자’라는 얘기를 들을 때 나는 산자가 아니라 생각했다. 명단이 기준에 맞지도 않고 용납되지 않는 기준이었다. 내가 근무하는 부서가 생산지원팀 자재과이다. 지난해 11월 큰 사고가 있었다. 4명의 동료가 죽어갔다. 30여명의 동료들이 병원에 입원했다. 남은 동료가 13명, 알바 8명 받아서 21명이서 1,2공장 돌렸다. 우리땜에 라인 설까 싶어서 새벽까지 일했다. 그런데 그 결과가 정리해고였다. 나는 반드시 해고명단에 들어있겠다 싶었는데 내가 빠졌더라. 올라올 때 같이 일하던 아우 한명이 희망퇴직원을 쓰려고 하더라. 그런데 차마 쓰지 말라는 얘기를 못했다. 여기 올라와서 꼭 같이 싸우자고 전화를 했는데, 며칠 뒤에 “형, 미안해요”라는 답이더라. 억장이 무너진다. 내 비록 창원에서 얼마 안되는 ‘산자’이지만, 여기 있는 여러 동료들과 함께 끝까지 투쟁하겠다는 결의를 다지며, 이 투쟁의 정당성을 부여하며, 기필코 승리한다는 의지와 결의를 모아내었다.
8일 1,000여명의 정리해고 통보로 결코 밝지 않은 이날 집회에서 동지들의 결의와 지도부의 힘찬 투쟁의지로 쌍차 투쟁의 횃불은 활활 타올랐다.

이 투쟁 기필코 승리한다는 확신을 다시금 확인하는 날이였다. 단결 투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