쌍차 전면 총파업 5일차 - 절망퇴직을 넘어 희망 총파업투쟁으로....
쌍차 조합원이 주체가 되어 쟁대위 지침에 따라 총파업 투쟁 사수하자!

현장 조합원 힘으로 정리해고 분쇄하고, 총고용 보장 사수 투쟁 의지를 다지는 하루였다.
회사에서 18일부터 25일까지 진행되었던 2차 희망퇴직 시간이 12시로 종료되는 날을 맞아 쌍차 지부 상집은 각 거점 현장으로 들어가 쟁대위 지침 및 이후 총파업 투쟁에 대한 조합원 간담회가 개최되었다.
간담회에서 전면 총파업 일정과 방향을 알리고, 조합원 결의를 다지는 자리로 마련되었다. 각 거점별 간담회에서 조합원들의 총의가 하나둘 쟁대위로 모아지고 있음을 확인하였다. 쟁대위 지침에 따라 정리해고 분쇄! 총고용 사수 투쟁에 조합원이 주체가 되어 나서겠다는 의지를 다졌다.
일부 거점 간담회 자리에서 조합원이 자발적으로 발언으로 결의를 다지며, 회사 절망퇴직 종용으로 고민이 많았다는 조합원 스스로가 동지들 앞에 나와 진솔하게 심경을 고백을 하는 자리도 있었다. 이 자리에서 조합원 동지들과 절망퇴직으로 인한 고통을 나누고 회사의 비열함에 분노를 모아내기도 하였다. 쌍차 조합원 대다수가 총파업 투쟁을 오기까지 힘들었던 과정이었을 것이다. 회사의 허위 명단에 속아 기간 조합원은 물론 가족까지 이중고통을 당해야 했음에 울분을 토로하는 조합원들이 많았을 것이다. 그렇지만 쟁대위를 믿고, 옆 동지를 믿고 끝까지 전면 총파업 투쟁을 사수한다면, 절망퇴직을 넘어 희망의 총파업투쟁으로 총고용 사수 투쟁을 쟁취할 수 있을 것이다. 이 투쟁에 조합원이 주체가 되어 나서야 함을 일깨워주는 간담회 자리였다.
조립4팀에서는 조합원 4인이 자발적으로 나와 결의를 다지고 삭발식을 거행하여 전면 총파업투쟁 분위기를 고조시키기도 하였다.
쌍차 지부에서 조합원들과 함께하는 간담회는 반응이 좋았으며, 이 간담회를 통하여 조합원 의지 하나 둘씩 쟁대위로 모아지고 있음을 다시금 확인하는 자리였다.
회사 25일 “참여와 역할”에서 강력한 구조조정 불가피론 필역
정리해고 명단이 없었음을 회사 “참여와 역할”에서 스스로 밝혀
회사 소식지인 “참여와 역할”을 25일 발표하였다. 내용은 보면 ▲ 9월 13일까지 회생계획안을 제출하여야 함으로 인력 구조조정은 불가피 함 ▲ 지금 위기 본질은 시장 흐름에 대응 못하고, 타사 경쟁모델 출시에 따른 소비자 선택권 상실, 상하이 자본과 갈등 등 위기의 본질이다 ▲ 옥쇄 파업은 공멸이다 ▲ 회생 절차를 위한 1천여명 넘는 희망퇴직자 불가피 함 ▲ 사무직 희망퇴직 마무리 ▲ 회사 희망퇴직 회피노력에 이어 기능직에 대해 종합적 선정 기준 토대로 인력조정 인원 최종 통보 ▲ 5월 급여 지급 불가능 ▲ 남는 자 회사 정상화 위해 고통 감내 ▲ 불법행위 법적 절차에 따라 단호히 대처 할 것을 밝혔다.
회사가 소식지 “참여와 역할”에서 밝힌 내용을 보면 회사 경영상 문제로 구조조정은 불가피한 선택이라 밝히고 있지만 무능 경영진 책임을 회피, 쌍차 조합원에게 고통을 전가하겠다는 회사의 의지를 필역하고 있다. 그리고 상하이 먹튀 자본의 해외매각 초기 약속한 투자계획을 이행하지 않고, 무능 경영으로 초래된 문제임을 회사 스스로 “참여와 역할”에서 자백하고 있다.
회사는 희망퇴직 정리해고를 가속화하여 쌍용차 지부의 활동을 무력화 시도하여 사무직 포함 1400여명 쌍차 조합원이 희망퇴직원을 제출하였다. 희망퇴직으로 야기된 현장 흔들기에 따른 쌍차 조합원의 분노가 상하이 먹튀 자본과 해외매각 주범인 정부에 맞선 투쟁으로 촉발되어야 한다.
굴뚝 고공농성 13일차
쌍용차 원하청 공동투뱅 승리를 위한 굴뚝 고공농성 투쟁 13일차 현장의 파업대오를 맨 위에서 지켜보고 있다.

파업투쟁이 13일차 투쟁 승리하지 않으면 내려오지 않겠다는 3인의 부지회장의 굳은 의지가 현장의 파업대오가 결합하면서 평택공장 총파업 투쟁을 달구고 있다.

민주노동당 홍희덕 의원이 쌍차 지부에 방무하여 굴뚝 농성장에 지지 연대하고 지부 사무실에서 지부장을 만나고 갔다.
총파업 결의 모으기 촛불문화제
현장 정문 앞 2000여명의 총파업 대오와 연대단위들이 모여 오후 7시부터 촛불문화제를 개최하였다. 회사 희망퇴직으로 인한 불안감으로 쟁대위 지침에 따라 늦게 총파업대오에 합류한 조합원들이 모였다. 아래 미디어 충청 기사에 자세한 내용을 담아 본다.
손녀 얻고, 득남했지만 '정리해고 철회' 한목소리
[인터뷰]쌍용차 촛불에서 만난 노동자 이야기
정재은(eun@cmedia.or.kr)
파업4일차, 굴뚝고공농성 12일차 쌍용차 정규직-비정규직 노동자들은 어김없이 저녁7시30분 공장에서 촛불을 들었다. 이날 촛불은 사회자가 조합원을 인터뷰하는 방식으로 진행되었고, 파업 첫날 손녀를 얻은 노동자, 전날 득남한 노동자 등 구구절절한 사연들이 튀어나왔다.

한 노동자의 아내가 아이, 시어미니와 함께 남편과 함께 투쟁하겠다며 서울에서 짐을 싸서 평택으로 내려왔다.
아이뿐 아니라 시어머니도 함께 왔다는 어느 노동자의 아내는 "서울서 아예 짐을 싸 왔다"며 싸움이 너무 힘들고 외롭고 서글퍼서 남편의 정리해고 철회 투쟁 참가를 반대했지만, 이제는 함께 싸워야겠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싸움에서 이겨서 서울로 돌아가겠다며 촛불을 들었다. 남편은 이날 가족들이 평택 공장으로 온 것을 까맣게 모르고 있었다.
25일 촛불을 들었던 쌍용차 노동자들의 인터뷰 전문이다.
58년 개띠 늙은 노동자, 파업 첫날 손녀 얻어
맨 먼저 정비지회 양관종 조합원을 앞으로 모셔서 얘기를 좀 듣도록 하겠습니다. 정말 반갑습니다. 아니, 그런데 연세가 많이 들어보이시는데 혹시 정년이 얼마 남으셨습니까?
53년생 뱀띠니까 이제 정년 2년 남았죠.
어이쿠, 정년이 2년 남으셨다고요? 그러시군요. 그런데 제가 듣기로 평택공장에 총파업 합류하러 올라오시던 날 기쁜 소식이 있었다고 들었습니다.
지지난주 금요일 저녁 9시에 태어났는데, 손녀가 태어났습니다. 친구가 사주를 보았는데, 친구야 손녀 사주 어떻디? 최소한 법관은 되겠더라. 남편복도 있고, 좋더라. 그래서 힘을 얻고 저녁밥 맛있게 먹었습니다.

네, 그렇군요. 그렇게 좋은 소식이 있었으면 올라오실 때 아들, 며느리, 손자 얼굴이 눈에 밟히셨을 텐데, 마음이 좀 어떠신가요?
갈등할 이유가 없었어요. 왜냐면 희망퇴직 계획이 뜨고 분사계획이 떴을 때 나름 계산을 해봤고, 그쪽 생각을 접고 지내고 있었습니다. 저는 일을 하고 싶어서 이 자리에 왔습니다.
정년이 2년 남으셨으면 회사에서 희망퇴직 신청하라고 난리 깨나 쳤을 것 같은데요?
제가 성남에 있는 소장이나 그외 팀장에게 전화 한 통이라도 받았다면 하루저녁이라도 고민했겠지만, 같이 일하는 동료에게 말을 들었을 뿐입니다. 안타깝게도 다년간 대의원을 했던 제 동료가 저에게 하루는 지난주 화요일 일하고 있는데 잠깐 보자고 하더라고.
“이건 형님한테 알려드려야 해. 형님 명단에 있다고 합니다.”
“너 그거 누구에게 확인했냐?”
“팀장에게 확인했는데 이름은 말할 수 없다. 팀장에게 대의원 경력이 있어서 물어봤다는데 형님이 포함되어 있더라.”
성남 식구들 중에 누가 있느냐고 물었더니 저를 포함해서 5명이랍니다.
“어떻게 할거냐?”고 물어보자 동료는
“저는 분사 갈 계획입니다. 형님도 같이 가시지요.”
“난 생각이 없다. 근데 그 분사 어떻게 할거냐?”고 물어보니 아무개가 성남으로 오고, 나는 한 달에 얼마를 받고 잔업 없이 퇴근할 수 있고 어쩌구저쩌구 늘어놓더라. 그 순간에 저는 바로 판단을 하고 그날 “너 네 갈 길 가라. 나는 내가 알아서 하겠다” 하고서 오후 5시30분 일찍 퇴근해서 집에 갔습니다. 저녁 먹고 9시 뉴스 때까지 아무 말 없자 가족들이 “여보, 회사에 무슨 일 있죠”해서 이실직고를 했다. “들었을 뿐이다. 그러나 내 눈으로 본 건 없다.” 어떻게 할 거냐 묻기에 “나는 파업 간다”고 했습니다. 구르마 끌고 동네 마트 가서 쌀 10키로, 고추장, 김치 등 배낭 꾸려 매고 오니까 굉장히 무겁더라.
그래도 이렇게 올라오셨으니 이 많은 조합원들 앞에서 한마디 하셔야 하지 않을까요?
저는 연설가가 아닙니다. 여러분, 힘내십쇼. 72년 군에 갔다가 93년 중령 진급 못해서 쫓겨나온 예비역 포병 육군 소령입니다. 저는 성남 부품에 근무하고 있습니다. 이길지 질지 모르는 동지들은 이것 하나만 생각하십쇼. 제가 떠나서 복직투쟁에 참가하건 안하건 제가 잃는 것은 직장 하나뿐이다. 네가 잘 살진 모르지만, 너는 비정규직 일자리 하나를 얻고 혹은 돈 몇 푼을 얻을 것이다. 그러나 너는 둘을 잃는다. 15년 이상 근무했던 동지들을 잃을 것이고, 노동조합을 잃어버릴 것이다.

창원, “늦게 왔지만... 2배, 3배 열심히 한번 뛰어보겠다”
이번에는 저 멀리 우리 자동차의 심장 엔진을 조립하는 창원공장 조합원들을 모셔볼까 합니다. 아이쿠, 여러 동지들이 떼로 나오셨네요.
박재석입니다. 저는 창원공장에 협정근로자 부서입니다. 그러다보니 본의 아니게 늦게 올라오게 되었다. 주위에 3분도 못 올라오다 올라왔습니다. 죄송하게 생각한다.
올라오는 데에만 몇 시간 걸리셨을 텐데, 조금 늦게 올라오셨다고요.
노조 지침이 하달되기를 24일 6시까지 오라 했는데, 조금 늦게 도착하게 되었습니다.
네, 그런 사정이 있었군요. 그래도 여기 지침 성실하게 이행하신 조합원들 많이 계신데 뭐라고 한마디 해주셔야죠?
동지 여러분, 이렇게 만나서 반갑다. 창원에 있을 적에는 협정이라는 비겁한 누를 쓰고 배신자같이 살아왔다. 머리도 많이 아팠다. 신경통이 오고 약도 먹었다. 올라오는 순간부터 모든 것이 사라졌다. 내 가족을 위하고 동지들하고 같이, 배신자 낙오 안 찍히기 위해 동참하러 올라왔다. 용서 바란다.
평택공장 노동자들은 많이 들었는데, 그래도 창원에서는 어땠는지 궁금한데요. 그곳에서도 가짜 정리해고 명단 들고 다니면서 희망퇴직 종용하던가요?
저도 협정으로서 노조 대의원을 3번 했다. 그래서 나한테 억압은 그렇게 없었는데 주위 동료들은 이야기를 들어보니 주위 사람 말 들어보니 억압과 회유가 말할 나위 없었다. 나라는 사람은 터치 않더라. 내 주위에 노동운동 하던 동료들도 회유 못 이기고 떠날 때 마음이 너무 아팠다. 그래서 더 힘을 내서 끝까지 해서 이겨보자, 떠나는 동지들도 이게 맞구나 해서 돌아오도록 올라왔다. 와서 보니까 그 동지들도 일부 와 있지만, 쓰고 떠난 동지들 볼 때 마음이 착잡하다. 그 동지들 위해서 끝까지 투쟁 성공할 때까지 2배, 3배 열심히 한번 뛰어보겠다.
21일 득남한 광주 노동자, 파업 위해 평택으로
아차, 제가 본래 정비지회 조합원 한 분을 먼저 모셨어야 했는데, 깜빡 순서를 잊었습니다. 정비지회 광주분회 이중철 조합원 모셔보겠습니다.
첫아들이면서 새롭게 시작하는 입장에 서있다. 21일 부부의 날이었는데, 그날 아들이 태어났다.

아, 득남을 하셨군요. 쌍용차가 파업에 돌입한 5월 22일은 아주 역사적인 날입니다. 한 분은 손자를 보셨고, 한 분은 아들을 보셨네요. 그런데 마찬가지로 올라오시던 날 아내하고 아들이 눈에 밟히셨을 것 같은데, 혹시 나중에 집사람한테 원망 들으시는 것 아닙니까?
퇴원도 못시키고 왔지만 내가 하지 않으면 안 되는 것이고 많은 동지들이 함께 있고 그래서 더 힘이 된다. 나도 조합원 일원인 것이 자랑스럽게 느끼고 있다.
네, 그러시군요. 그럼 이 투쟁에 집사람과 아들의 생존권이 함께 걸렸네요. 많이 보고 싶으시죠?
내가 노동가나 노래를 참 좋아한다. 임을 위한 행진곡에서 “앞서서 나가니 산자여 따르라”를 들을 때마다 목이 멘다. 그 문구처럼 너와 내가 하나다 하는 전 조합원 생각이 있고, 양심을 갖고 떳떳이 나아갔으면 한다.
아이 이름 한번 불러볼까요?
애 이름을 아직 못 지었다. 태명만 지어놓은 상태이다.
조합원들 앞에서 한 말씀 해 주세요.
아까 무대에서 선배 노동자 얘길 들었는데 나 같았으면 (희망퇴직하고)나갔을 것 같다. 온갖 회유 협박이 있었다면, 내가 그 나이라면 나갔을 것 같다. 그래서 참 고맙다. 같이 계시면서 너와 내가 하나라는 마음으로, 아픔을 주지 말고 위로가 될 말을 하면서 이 자리를 지켜냈으면 좋겠다.
정재은 미디어충청 기자